자본주의의 시계추, 한국 정치의 시간과 함께 흔들리다

목차

요약

이 글은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현대까지의 흐름을 짚어보며, 한국 정치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고찰합니다. 특히 종교적 윤리의 변화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자본주의의 분배 메커니즘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고,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자본주의의 충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냅니다.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자본주의 이미지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솔직히 말해서 별 기대는 없었어요. 경제사는 늘 뻔한 얘기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제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어떤 사회적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내고, 어떻게 분배해왔는지를 물으며, 그 흐름을 명확하게 짚어줬기 때문이죠.

자본주의의 기원과 종교의 영향

경제사

중세 유럽은 경제적 활동에 냉소적이었어요.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는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금융업은 거의 죄악시되었죠. 그런데 십자군 전쟁, 도시화, 유랑 상인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자본주의의 씨앗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합니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의 정당화

프로테스탄티즘

자본주의에 불을 지핀 건 바로 종교였어요. 프로테스탄티즘은 이윤 추구를 하느님의 소명으로 보았고, 낭비 없는 삶을 강조했어요. 이게 자본 축적을 도덕적인 일로 만들면서, 자본주의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죠.

질문: 종교가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요?

네, 실제로 종교 윤리는 경제적 행동의 도덕적 기준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어요. 특히 칼뱅주의 같은 경우엔 근면, 절약, 축적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의 윤리적 기반을 마련했죠.

애덤 스미스와 보이지 않는 손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을 문제 삼지 않았어요. 오히려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했죠.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주의가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어요.

분배의 문제, 그리고 불평등의 반복

분배 문제

초기의 자본주의는 분배에 관심이 없었어요. 생산에만 집중했죠. 하지만 노동자의 삶은 비참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마르크스 같은 인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후 불평등이 심해질 때마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등장했어요.

주의사항: 자본주의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으며,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항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치와 자본주의의 충돌

한국 정치

한국은 자본주의의 진자 운동에서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있어요. 분배를 강조하는 좌파와, 효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우파의 충돌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해요. 특히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은 자본 축적의 맥락에서 본다면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참고사항: 박정희 정부의 공과 과를 평가할 땐, 당시 시대의 경제적 맥락과 자본주의 발전 단계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시계추처럼 오가는 자본주의

시계추 이론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자본주의도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아요. 분배와 불평등 사이를 오가며, 위기를 겪고 다시 일어나는 시스템이거든요. 그리고 이 회복의 힘은 바로 자본주의의 유연성에 있다고 봅니다.

맺으며: 자본주의와 정치가 맞물릴 때

맺음말

경제는 사실과 숫자의 영역, 정치는 믿음과 주관의 영역이에요. 정치가 경제의 시계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 할 때, 시장은 반격을 가하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는 경제의 시간대로, 정치는 정치의 시간대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의 참고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Capitalism: Where We’ve Been, Where We’re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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