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생일을 며칠 앞둔 주말, 와인 샵에서 장을 보고 오는 길에 나는 중요한 결심을 했다. 바로 신용카드를 없애기로 말이다. 분명히 돈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통장잔고는 그대로여서 돈을 썼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점이 늘 마음에 불안의 그림자를 남겼다. 이러한 불안감을 깨끗이 지울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따라 ‘생일이니까!’를 외치며 고가의 와인과 치즈를 산 것도 한 몫했는지, 다소 충동적으로 신용카드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 후, ‘생활비 통장’에 한 달 예산으로 책정한 돈만 남겨놓고 거기서 인출한 현금과 체크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 몇 달은 크고 작은 불편이 생겨 조금 후회했지만, 다시 신용카드를 살리지 않았다. 신용카드를 없애기 시작한 이후 몇 달 동안 눈에 띄게 지출이 줄었고, 그 결과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할부? 돈을 쓰는 순간과 빠져나가는 순간의 시차가 싫어서, 굳이 카드까지 없애놓고 미래의 돈을 끌어다 쓰는 할부를 하겠냐?’라는 결심 덕분이었다. 단호하게 외치며 상점에서 돌아서고 나면 며칠 지나지 않아 구매 욕구가 사라져 ‘안 사길 잘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계획을 세워 몇 달에 걸쳐 돈을 모으는 방식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명절, 경조사, 친구 생일과 같은 지출이 많이 생기는 시기에 맞춰 미리 예산을 조절하며 돈을 모으는 요령도 생겼다. 신용카드를 없애기 시작한 이래로 11년 동안 단 한 번도 할부를 이용하지 않았고, 이 습관은 지금도 나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있다.
하지만 카드 혜택의 유혹은 여전히 복잡했다. 카드의 전월 실적을 채워 각종 할인을 받으려면 ‘뭘 더 사지?’라고 고민하게 되었고, 2만 원을 받기 위해 9만 원을 더 쓰려는 내 모습에 충격을 받아 많이 고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만 원 이상 구매 시 만 오천 원 할인!’이라는 말에 더 살만한 물건을 찾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럴 때마다 등장하는 무적의 단어는 ‘어차피 살 것’. 어차피 살 물건들을 지금 사면 할인도 받고 여러모로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말로 어차피 살 것이었는지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이러한 혜택들은 철저한 마케팅적 계산으로 만들어진 소비 유도 수단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혜택이 아닌 미끼임을 상기하며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S신용카드를 없애고 소비를 줄이며 돈을 모으는 이 간단한 방법을 재테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노 카드테크’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11년간 목돈을 모아 적금으로 묶어놓았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긴 ‘파킹통장’을 활용하여 남는 돈을 수시로 입금하며 돈을 모으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그때 그 순간 신용카드를 없앤 결정이 빛을 발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 ‘노 카드테크’를 이어갈 생각이다. 미래의 나에게 빚을 지지 않고, 오히려 나의 재정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글 작성자: 김혼비
저자: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다정소감